한국의 국제학교 열풍이 보여주는 것
국제학교에 대한 관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제주와 송도의 국제학교는 물론이고 비인가 국제학교와 해외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국제학교를 둘러싼 논쟁은 대체로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어 환경, 해외 대학 진학, 프로젝트 중심 수업, 글로벌 역량과 같은 쟁점들로 말이다.
사실 이러한 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국제학교의 교육과정과 진학 실적, 학비와 입학 절차를 설명하는 글도 이미 충분히 많다. 그래서 여기서는 국제학교의 장점이나 단점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관심이 가는 지점은 조금 다른 데에 있다.
사람들이 왜 국제학교를 선택하는가.
조금 뒤로 물러나 보자면, 사람들은 왜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원하게 되었는가.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영어 교육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해외 대학 진학을 이야기한다. 교육 방식이나 학교 문화, 또래 환경을 이유로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다양한 이유들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하나의 단어에 도달하게 된다.
가능성이다.
국제학교는 더 많은 가능성을 상징한다. 정확히 말하면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상징한다. 국제학교를 선택하는 이유는 학교 자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만나게 될 수많은 옵션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나라의 대학에 진학할 것인가.
어느 언어로 공부할 것인가.
어느 나라에서 살아가게 될 것인가.
어떤 공동체에 속하게 될 것인가.
어떤 직업을 선택하게 될 것인가.
국제학교는 하나의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은 학교가 아니라 그 이후의 삶일 가능성이 크다.
말을 가르치다 보면 현장에서 그리고 그 시기에 생각하게 되는 점들이 많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게 모국어일지라도 말이다. 자기가 알고 있던 기존의 언어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풍경이 지금 막 새로 배운 말로 다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가치 있는 경험이다. 그래서 더 많은 언어를 배우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려는 시도 자체를 부정할 이유는 없다. 국제학교를 향한 관심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매우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이러한 현상을 거의 의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택의 기회는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옵션은 넓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클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것은 상당 부분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오늘날의 개인은 훨씬 더 많은 기회를 가지고 살아간다. 직업도 다양해졌고, 교육도 다양해졌으며, 삶의 방식 역시 다양해졌다. 선택의 기회가 확대된 것은 분명 현대 사회가 이룬 중요한 성취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는 것과 삶이 쉬워지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는 것과 자유가 커지는 것은 같은 의미일까.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방법을 배웠다. 더 많은 기회를 확보하는 방법도 배웠다. 더 넓은 가능성을 준비하는 방법 역시 배웠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보다 적게 이야기한다. 선택의 기회가 확대되는 것과 사유가 깊어지는 것은 반드시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실시간으로 스트리밍되는 정보와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더 많은 경험.
더 넓은 네트워크.
더 다양한 경력.
더 글로벌한 환경.
더 많은 옵션.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가능성을 긍정의 언어로 배워 왔다.
많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주고 싶어 한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정말 자유를 원해서 가능성을 원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 이유는 조금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옛날도 그렇고 요즘도 그렇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확신하기 어렵고, 지금의 정답이 미래에도 정답일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옵션을 확보하려고 한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가능성을 준비해 두면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국제학교 역시 그런 선택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사람들은 영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미래의 옵션을 구매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기에서 역설이 시작된다. 가능성은 자유를 주지만 동시에 불안을 만든다. 옵션이 많아질수록 선택은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려워진다. 선택의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은 더 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 결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과거에는 사회가 대신 답해주던 질문들 가운데 상당수가 이제는 개인에게 돌아온다. 선택의 기회는 확대되었지만 선택의 책임 역시 확대된 것이다.
국제학교 열풍을 보고 있으면 교육보다 시대가 먼저 보인다.
국제학교는 교육기관이다.
그러나 동시에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시대를 상징하는 풍경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더 많은 가능성을 원한다. 아이에게도,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도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에는 언제나 비용이 따른다. 그 비용은 학비만이 아니다.
수많은 옵션 앞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일 수도 있고, 잘못된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일 수도 있다. 어쩌면 가능성의 가격은 불안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원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가 얼마나 많은가가 아니라, 그 기회들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가능성의 확대만큼이나 깊은 사유가 필요하다.
국제학교를 생각하다가 결국 이런 질문에까지 오게 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선택의 기회를 원하게 되었는가.
선택의 기회가 늘어나면 정말 자유로워지는가.
우리는 선택하는 순간, 그 가능성에 매겨진 비용에 동의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다만, 그 조용한 대가를 아이가 홀로 치르고 있지는 않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댓글 남기기